‘셔츠룸’ 전단지의 정체…직접 전화해봤습니다

입력 2023.03.16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유흥가를 질주합니다. 행인이 있어도 속도를 전혀 안 줄입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바닥에 뿌립니다. 너무 순식간이라 오토바이 운전자가 뿌린 게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 '레깅스' '셔츠룸' and 전화번호가 전부

운전자가 살포한 건 전단지입니다. 일반적인 광고 전단과는 모습이 다릅니다.

흔한 주소 하나 없고, 지도도 없습니다. "전단지를 가져오면 소주 한 병 더 주겠다"는 홍보도 없습니다.

'쩜오 레깅스', '셔츠룸', '대화룸' 등 일종의 업태만 적혀 있습니다. 유흥업인 건 짐작이 되지만, 가게 이름이 뭔지, 위치는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여성의 사진과 큼지막한 전화번호가 전부인데, 그 번호가 어디로 연결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뭔가를 '꽁꽁' 숨기려고 하는 이상한 광고 전단은 서울 주요 유흥가 매일 최소 수백 장, 많게는 수천 장씩 뿌려집니다. 코로나 방역이 풀린 이후, 더 늘고 있습니다.


■ "전 그냥 알바생이에요"

지난 9일, 강남구청과 이 불법전단지 단속에 동행했습니다.

미리 파악한 동선에 맞춰 잠복했습니다. 3시간가량 잠복한 밤 11시 30분.

오토바이 한 대가 등장하고, 위 영상처럼 은밀히 전단을 뿌리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단속반이 몸으로 오토바이를 막아 세웠습니다.

붙잡힌 운전자는 '아르바이트'라고 했습니다.

"텔레그램으로 아르바이트 모집책과 소통했습니다"

"전단지는 보통 한적한 공원이나 공터에 누군가가 두고 가면, 그걸 가져다가 오토바이로 뿌렸습니다"

-지난 9일, 붙잡힌 오토바이 운전자

얼굴도 본 적 없는 이에게 전단만 받아 바닥에 뿌리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설명입니다.

하루 일당은 2~3시간 일해 10만 원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고액 알바' 축에 들 일이지만, 이날 단속에 적발된 알바생은 과태료 500만 원을 내야 합니다.


■ "저희도 전단지 조직은 몰라요"

전단지를 제작하고 살포하는 게 해당 유흥업소는 아닐까.

직접 전단지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했습니다.

누군지, 어딘지 전혀 밝히지도 않으면서,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강남역으로 오시면 되고요, 픽업도 가능하니까 현재 위치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 전단지 업자

1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만난 남성. 그런데 통화했던 사람과 목소리가 달랐습니다.

알고 보니, 만난 사람은 통화한 전단지 업자가 아니라 유흥업소 직원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텔레그램에서 전단지 업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남역 쪽에 000 옷을 입은 남성 고객이 있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지시를 받고, 업소 직원이 고객을 유흥업소로 데려가는 겁니다. 이 업소는 사실상 유사 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이었습니다.

취재를 종합하면, 전단지 제작과 살포 등을 총괄하는 조직은 유흥업소의 의뢰를 받고 전단지를 제작합니다.

전단에 담은 연락처는 유흥업소 쪽 번호가 아닙니다. 그러면 바로 적발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따로 운영하는 일종의 '콜센터' 번호를 남깁니다. 손님이 전화를 걸어오면, 업소로 따로 연락해 '접선'을 알선해 줍니다.

제작한 전단지 살포 업무는 단기 알바생들에게 맡기는데, 일종의 '던지기' 방식을 씁니다. 살포 지역과 물량을 정한 뒤 특정 장소에 전단지를 두면, 알바생이 가져가는 겁니다.

이들은 서로 만나지 않고, 텔레그램을 통해 소통합니다.


■ 텔레그램에 숨은 전단지 '윗선'

유흥업소 직원도 이 '전단지 업자'가 정확히 누군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또 전단지를 요청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단지를 살포한 오토바이 운전자를 잡아도, 그 윗선까지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강남구청은 올해 '전단지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3월 초까지 벌써 12만 장의 불법 전단지를 압수했습니다.

길거리를 다니다 한 번쯤 봤을 법한, 보기만 해도 민망한 그 전단지들. 단속반원들의 노고는 갈수록 커져가지만, 근절은 요원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셔츠룸’ 전단지의 정체…직접 전화해봤습니다
    • 입력 2023-03-16 07:00:23
    취재K

오토바이 한 대가 유흥가를 질주합니다. 행인이 있어도 속도를 전혀 안 줄입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바닥에 뿌립니다. 너무 순식간이라 오토바이 운전자가 뿌린 게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 '레깅스' '셔츠룸' and 전화번호가 전부

운전자가 살포한 건 전단지입니다. 일반적인 광고 전단과는 모습이 다릅니다.

흔한 주소 하나 없고, 지도도 없습니다. "전단지를 가져오면 소주 한 병 더 주겠다"는 홍보도 없습니다.

'쩜오 레깅스', '셔츠룸', '대화룸' 등 일종의 업태만 적혀 있습니다. 유흥업인 건 짐작이 되지만, 가게 이름이 뭔지, 위치는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여성의 사진과 큼지막한 전화번호가 전부인데, 그 번호가 어디로 연결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뭔가를 '꽁꽁' 숨기려고 하는 이상한 광고 전단은 서울 주요 유흥가 매일 최소 수백 장, 많게는 수천 장씩 뿌려집니다. 코로나 방역이 풀린 이후, 더 늘고 있습니다.


■ "전 그냥 알바생이에요"

지난 9일, 강남구청과 이 불법전단지 단속에 동행했습니다.

미리 파악한 동선에 맞춰 잠복했습니다. 3시간가량 잠복한 밤 11시 30분.

오토바이 한 대가 등장하고, 위 영상처럼 은밀히 전단을 뿌리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단속반이 몸으로 오토바이를 막아 세웠습니다.

붙잡힌 운전자는 '아르바이트'라고 했습니다.

"텔레그램으로 아르바이트 모집책과 소통했습니다"

"전단지는 보통 한적한 공원이나 공터에 누군가가 두고 가면, 그걸 가져다가 오토바이로 뿌렸습니다"

-지난 9일, 붙잡힌 오토바이 운전자

얼굴도 본 적 없는 이에게 전단만 받아 바닥에 뿌리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설명입니다.

하루 일당은 2~3시간 일해 10만 원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고액 알바' 축에 들 일이지만, 이날 단속에 적발된 알바생은 과태료 500만 원을 내야 합니다.


■ "저희도 전단지 조직은 몰라요"

전단지를 제작하고 살포하는 게 해당 유흥업소는 아닐까.

직접 전단지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했습니다.

누군지, 어딘지 전혀 밝히지도 않으면서,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강남역으로 오시면 되고요, 픽업도 가능하니까 현재 위치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 전단지 업자

1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만난 남성. 그런데 통화했던 사람과 목소리가 달랐습니다.

알고 보니, 만난 사람은 통화한 전단지 업자가 아니라 유흥업소 직원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텔레그램에서 전단지 업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남역 쪽에 000 옷을 입은 남성 고객이 있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지시를 받고, 업소 직원이 고객을 유흥업소로 데려가는 겁니다. 이 업소는 사실상 유사 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이었습니다.

취재를 종합하면, 전단지 제작과 살포 등을 총괄하는 조직은 유흥업소의 의뢰를 받고 전단지를 제작합니다.

전단에 담은 연락처는 유흥업소 쪽 번호가 아닙니다. 그러면 바로 적발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따로 운영하는 일종의 '콜센터' 번호를 남깁니다. 손님이 전화를 걸어오면, 업소로 따로 연락해 '접선'을 알선해 줍니다.

제작한 전단지 살포 업무는 단기 알바생들에게 맡기는데, 일종의 '던지기' 방식을 씁니다. 살포 지역과 물량을 정한 뒤 특정 장소에 전단지를 두면, 알바생이 가져가는 겁니다.

이들은 서로 만나지 않고, 텔레그램을 통해 소통합니다.


■ 텔레그램에 숨은 전단지 '윗선'

유흥업소 직원도 이 '전단지 업자'가 정확히 누군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또 전단지를 요청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단지를 살포한 오토바이 운전자를 잡아도, 그 윗선까지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강남구청은 올해 '전단지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3월 초까지 벌써 12만 장의 불법 전단지를 압수했습니다.

길거리를 다니다 한 번쯤 봤을 법한, 보기만 해도 민망한 그 전단지들. 단속반원들의 노고는 갈수록 커져가지만, 근절은 요원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