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합법이라도 우리 동네는 안돼”…‘성매매 딜레마’ 빠진 네덜란드

입력 2023.03.13 (10:47) 수정 2023.03.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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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 세계 최초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 네덜란드인데요.

오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성매매 합법화에 성공했지만, 이를 둘러싼 진통이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매매를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던 네덜란드의 도전, 과연 얼마나 성공했을까요?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네덜란드가 성매매촌을 새로운 곳으로 옮기려고 계획 중인데, 유럽연합 산하기관까지 나서서 반대를 한다고요?

[기자]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당국이 시 외곽으로 성매매촌을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몇년째 시작도 못 하고 있습니다.

후보지로 입에 오르는 곳마다 반대가 거세기 때문인데요.

유럽연합 산하기관 유럽의약품청은 최근 새로운 성매매촌을 조성하려는 암스테르담시 당국의 계획을 매우 우려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시 당국이 발표한 새 후보지 3곳 중 2곳이 유럽의약품청 본부 근처이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업소가 들어서면 주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대하는 겁니다.

[앵커]

이런 걱정이 나올 법도 한 게 도심 성매매촌 주변에 '소변을 보지 마라', '쓰레기를 버리지 마라' 하는 경고가 붙을 정도라면서요?

[기자]

암스테르담시는 2021년 도심에 위치한 합법 성매매촌을 정리하고 교외에 이른바 '에로틱센터'를 세우기로 했는데요.

도심 한가운데 대규모 홍등가가 있다보니 각종 사건사고와 범죄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수용하기 힘들 만큼 많은 성매수 관광객이 몰려든다는 게 문제입니다.

암스테르담을 찾는 성매수 관광객은 올해 천 8백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암스테르담 주민 수의 22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주민 항의가 빗발칠 수 밖에 없겠죠.

[전 암스테르담 부시장 : "도심 성매매촌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요. 너무 붐빕니다. 주민들은 골목이 막혀서 집에서 나갈 수도 없어요."]

여기에 대마초까지 합법이라, 암스테르담은 '마약과 향락의 도시'로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런 오명은 씻고 싶은데 성매매 합법화는 해야겠고, 결국 성매매촌을 외곽으로 옮기자는 계획을 내놓은건데 부지 선정부터 차질을 빚고 있는 겁니다.

[앵커]

네덜란드가 성매매를 합법화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는데도 제도가 자리잡지 못한 것 같네요.

[기자]

네덜란드는 2000년 '성매매금지령'을 폐지하며 성매매를 합법화했습니다.

성매매를 근절하기는 힘들고, 단속하면 오히려 더 음지로 숨어들어 각종 범죄가 유발되니, 아예 수면 위로 올려서 관리하겠다는 취지였죠.

자발적인 성매매는 자유롭게 두고, 강제적 성매매나 미성년자 성 학대는 규제한다는 게 네덜란드 성매매 합법화의 골자입니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죠.

뉴욕타임스는 "네덜란드의 많은 성매매 종사자가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치욕스러워 하거나,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 이라고 분석해습니다.

[앵커]

성매매에 대한 네덜란드 사회의 이중적인 시각이 더 잘 드러난 계기가 있다고요?

[기자]

코로나19 대유행인데요.

성판매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해 성매매를 합법화했다지만, 전염병 대유행기에는 이들이 오히려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코로나19가 번지며 도입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를 2020년 5월부터 부분적으로 해제했다가, 시행했다가를 반복했는데, 체육관과 사우나까지 영업을 재개한 지 한참 뒤에야 성매매 영업을 다시 허용해 줬습니다.

그 사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성판매자들은 다시 불법 성매매로 빠지거나, 온라인에서 음란 방송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단순히 성매매를 제도화하느냐 아니냐로 성매매를 둘러싼 온갖 사회 문제나 인식을 바꾸기는 힘든 것 같네요.

[기자]

네덜란드 성매매 합법화라는 도전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2015년 내놓은 '성매매 합법화 평가 보고서'를 보면, 성매매 합법화로 관련 범죄를 막았다거나 성매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합법화의 기준이 되는 성매매의 '자발성'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성매매를 법의 테두리 안에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테두리의 바깥에 존재하는 불법 이민자의 성매매 등이 새로운 과제로 남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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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3 10:47:55
    • 수정2023-03-13 14: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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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초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 네덜란드인데요.

오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성매매 합법화에 성공했지만, 이를 둘러싼 진통이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매매를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던 네덜란드의 도전, 과연 얼마나 성공했을까요?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네덜란드가 성매매촌을 새로운 곳으로 옮기려고 계획 중인데, 유럽연합 산하기관까지 나서서 반대를 한다고요?

[기자]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당국이 시 외곽으로 성매매촌을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몇년째 시작도 못 하고 있습니다.

후보지로 입에 오르는 곳마다 반대가 거세기 때문인데요.

유럽연합 산하기관 유럽의약품청은 최근 새로운 성매매촌을 조성하려는 암스테르담시 당국의 계획을 매우 우려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시 당국이 발표한 새 후보지 3곳 중 2곳이 유럽의약품청 본부 근처이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업소가 들어서면 주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대하는 겁니다.

[앵커]

이런 걱정이 나올 법도 한 게 도심 성매매촌 주변에 '소변을 보지 마라', '쓰레기를 버리지 마라' 하는 경고가 붙을 정도라면서요?

[기자]

암스테르담시는 2021년 도심에 위치한 합법 성매매촌을 정리하고 교외에 이른바 '에로틱센터'를 세우기로 했는데요.

도심 한가운데 대규모 홍등가가 있다보니 각종 사건사고와 범죄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수용하기 힘들 만큼 많은 성매수 관광객이 몰려든다는 게 문제입니다.

암스테르담을 찾는 성매수 관광객은 올해 천 8백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암스테르담 주민 수의 22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주민 항의가 빗발칠 수 밖에 없겠죠.

[전 암스테르담 부시장 : "도심 성매매촌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요. 너무 붐빕니다. 주민들은 골목이 막혀서 집에서 나갈 수도 없어요."]

여기에 대마초까지 합법이라, 암스테르담은 '마약과 향락의 도시'로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런 오명은 씻고 싶은데 성매매 합법화는 해야겠고, 결국 성매매촌을 외곽으로 옮기자는 계획을 내놓은건데 부지 선정부터 차질을 빚고 있는 겁니다.

[앵커]

네덜란드가 성매매를 합법화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는데도 제도가 자리잡지 못한 것 같네요.

[기자]

네덜란드는 2000년 '성매매금지령'을 폐지하며 성매매를 합법화했습니다.

성매매를 근절하기는 힘들고, 단속하면 오히려 더 음지로 숨어들어 각종 범죄가 유발되니, 아예 수면 위로 올려서 관리하겠다는 취지였죠.

자발적인 성매매는 자유롭게 두고, 강제적 성매매나 미성년자 성 학대는 규제한다는 게 네덜란드 성매매 합법화의 골자입니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죠.

뉴욕타임스는 "네덜란드의 많은 성매매 종사자가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치욕스러워 하거나,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 이라고 분석해습니다.

[앵커]

성매매에 대한 네덜란드 사회의 이중적인 시각이 더 잘 드러난 계기가 있다고요?

[기자]

코로나19 대유행인데요.

성판매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해 성매매를 합법화했다지만, 전염병 대유행기에는 이들이 오히려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코로나19가 번지며 도입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를 2020년 5월부터 부분적으로 해제했다가, 시행했다가를 반복했는데, 체육관과 사우나까지 영업을 재개한 지 한참 뒤에야 성매매 영업을 다시 허용해 줬습니다.

그 사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성판매자들은 다시 불법 성매매로 빠지거나, 온라인에서 음란 방송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단순히 성매매를 제도화하느냐 아니냐로 성매매를 둘러싼 온갖 사회 문제나 인식을 바꾸기는 힘든 것 같네요.

[기자]

네덜란드 성매매 합법화라는 도전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2015년 내놓은 '성매매 합법화 평가 보고서'를 보면, 성매매 합법화로 관련 범죄를 막았다거나 성매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합법화의 기준이 되는 성매매의 '자발성'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성매매를 법의 테두리 안에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테두리의 바깥에 존재하는 불법 이민자의 성매매 등이 새로운 과제로 남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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