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라는 이유로…‘보호받지 못하는’ 성착취 피해자들

조문희 기자

성매수자·업주의 협박·폭력, 그냥 참거나 두려워 신고 못해

보호장치 없는 사회…“어차피 달라지는 것 없어” 자포자기

“이들이 안전하게 피해 호소할 제도 시급…성산업 근절돼야”

ㄱ씨(여)는 2018년 12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난 ㄴ씨(남)와 성매매를 약속했다. 같은달 말 서울 종로구 모텔에서 60만원을 받고 성행위를 한 뒤 이듬해 1월 인천 부평구에서 ㄴ씨를 다시 만났다. 이 과정에서 ㄴ씨는 성행위 사진을 촬영하고, ㄱ씨의 나체 등을 영상으로 찍었다.

촬영물은 ㄴ씨가 ㄱ씨를 협박하는 근거가 됐다. ㄱ씨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유로 더 이상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ㄴ씨는 2019년 2월 온라인 메신저로 사진을 보냈다.

ㄱ씨가 지워달라고 하자 “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 “네가 가진 건 쓸 만한 몸뚱어리뿐인데 그거면 되지 않겠니?” 등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 영상을 유포할 것처럼 협박해 성매매를 계속하라고 강요했다. ㄱ씨는 ㄴ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성매매 여성은 협박에 따른 성착취에서 법의 보호 사각지대에 있다. 성범죄 피해자가 겪는 어려움에 더해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보호를 더 어렵게 한다. 서울시성매매피해여성지원협의회가 지난해 10월 최근 5년 이내 서울지역 산업형 성매매 종사여성 12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32.3%(41명)가 ‘구매자가 내 직업을 이유로 협박했다’고 답했다. 업주 및 업소 관계자에 대해서는 119명 중 24.4%(29명)가 외부에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했다.

ㄱ씨처럼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은 예외적인 경우다.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다시함께상담센터에 따르면 협박에 의해 성착취를 당하면서도 수사기관과 가족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ㄷ씨(26)는 성매수자로 만난 ㄹ씨가 이후에도 성관계를 계속 요구해 거절했다가 스토킹과 협박을 당했다. ㄹ씨는 흥신소를 통해 ㄷ씨 실명, 가족 연락처, 집 주소 등을 알아낸 뒤 ㄷ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ㄷ씨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사실이 공개될까 두려워 가해자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성매매피해여성지원협의회 조사에서 업주·업소 관계자의 폭력에 51.3%(61명)가 ‘참았다’고 응답했다. 성매수자의 폭력을 ‘참았다’고 답한 비율은 55.1%(70명)에 이르렀다. 성매매 여성이 업주 등의 폭력에도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36명, 30.2%)가 가장 많았고, ‘나에게 불이익이 올까봐’(27명, 22.7%)가 뒤이었다. 37명은 성매수자로부터 불법촬영 및 촬영 시도를 포함한 폭력을 경험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업주 및 업소 관계자가 신고를 못하게 함’(7명), ‘내가 처벌받을까봐’(6명)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와 유사한 방식도 나타났다. 다시함께상담센터에 따르면 ㅁ양(14)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ㅂ씨를 만났다. ㅂ씨는 친밀감을 형성한 뒤 ㅁ양에게 조건만남을 제안했다. 성관계 중 ‘바로 지우겠다’며 동영상을 찍었다. 이후 ㅂ씨는 ‘(영상을) 가족, 지인, 학교에 보내겠다. SNS에 유포하겠다’며 ㅁ양을 협박해 돈을 빼앗고 성관계를 이어갔다. ㅁ양은 ㅂ씨가 요구한 돈을 마련할 수 없어 또 다른 영상을 ㅂ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김민영 다시함께상담센터 소장은 “불법촬영, 협박을 동반한 텔레그램 성착취 등 여성폭력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더 자주, 쉽게 일어난다”며 “성폭행과 협박 등 범죄에 노출되어도 본인이 성매매 여성이란 사실이 드러나게 되거나,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신고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 ‘성적거래가 당연히 성착취를 수반한다’고 말한다면 이를 산업적으로 용인하는 모든 구조가 와해돼야 한다”며 “그전까지는 성매매 여성들이 모든 피해를 안전하게 호소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했다.


Today`s HOT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