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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따뜻하게 입어"…성매매 그만두게 한 아빠의 댓글

제주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 사연보니…경제 문제에 외로움도
"죽는 것보다 죽어도 아무도 안올까 더 무서워"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2021-09-09 06:00 송고 | 2021-09-09 08:04 최종수정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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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야외에 있다는 글을 SNS에 올렸는데 아빠가 댓글로 '춥다. 감기 걸린다. 따뜻하게 입어라'이런 댓글을 달아주신 거예요. 아빠 댓글을 보고 내가 만약에 이 시간까지 왜 깨어있는지를 그 이유를 다 알게 된다면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할까…이게 좀 컸어요"

조건만남을 하려고 나온 A양은 생각지 못한 아버지의 따스한 댓글에 마음이 흔들렸다.

A양은 초등학생 시절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가 야간작업 때문에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해 동생과 둘이서 무서운 밤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 지인에게 성폭행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학교에서는 엄마도 없고 잘 씻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남들의 관심을 끌려고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A양이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구다.

어렵사리 사귄 친구가 어느날 "남자랑 성관계를 하면 돈을 주는데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A양은 "이 친구와 같이 있으려면 이거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같은 내용은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하 여가원)이 최근 발간한 '제주지역 성매매 피해 청소년 실태와 지원방안(연구책임자 이화진 연구위원)'에 실려있다.

여가원은 성매매 피해 청소년 및 관련기관 종사자 각각 1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통해 성매매 진입배경 및 피해 실태, 피해대응 및 영향, 피해자 지원 및 인식개선을 위한 정책수요 등을 수록했다.

◇"죽는 것보다, 죽어도 아무도 안올까봐 더 무서워요"

여가원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계기는 아동학대와 성적학대, 또래 관계 유지, 경제적 궁핍 등 다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린시절부터 타인과 관계나 애정에 목말라 있던 A양의 경우 친구 사이를 유지하려고 성매매를 택하게 됐다고 한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 중에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극단적 선택과 자해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B양은 "허벅지에 자해하고 벽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며 "딱 그때뿐이기는 하지만 내가 힘든 걸(주변에서)알아주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C양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죽은 후 아무도 와줄 사람이 없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더 크다고 한다.

C양은 "베란다에 올라가서 내가 죽어도 누가 나한테 뭐라 할까? 사람이 죽으면 다 슬퍼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죽으면 누가 와 줄까? 죽고 나서 아무도 안올까봐 그게 너무 무섭고 비참한 거예요. 내 얘기 들어주는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토로했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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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과 다른 청소년 문화 이해하고 자립 지원해야"


경제적 문제는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이유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현재 공공기관의 경제적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성매매 경험이 있는 한 청소년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 동사무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는데 50만원을 지원해줄 수 있지만 80만원 이상을 받는 일을 하면 중단된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이 청소년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학점은행제를 신청하려는 데 ID 발급에 4000원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 돈조차 없었거든요. 복지시설 직원에게 '저 어떡해요' 물으니 '저한테 그걸 왜 물어요?' 그러는 거예요. 엄청 울었어요. 너무 서러워서. 그 적은 돈이, 이렇게 크게 영향을 미칠줄은 몰랐어요"라고 했다.

성매매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그만두는 경우 중 하나는 가족의 관심이다.

A양 역시 아버지와 애증의 관계이지만 가족의 관심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성매매 중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가원은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성매매 초기 진입의 이유는 또래 관계 유지를 위한 부분이 상당하게 존재한다"며 "재진입을 막고 올바른 결정을 할수 있게 부모와 친구 등 대인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제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A양은 "저같은 경우는 돈이 아니라 친구와의 관계로 성매매를 하게 됐어요"라며 "지금 성매매를 하려는 친구들이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와 관계를 쌓는 방법 같은 걸 가르쳐주는 게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다 외로워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했다.

여가원은 "청소년 성매매 피해자를 발견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는 성인과 다른 청소년 문화와 소통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피해 청소년 대부분이 생활비 문제로 성매매를 하는 만큼 다양한 방식의 자립지원과 관련 기관들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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