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는 '성 노동자'입니다

인권 아닌 자본의 편에 선 국가… 도구로 쓰여진 존재 '성 노동자'

입력 2024-02-19 19:26 수정 2024-03-27 15:28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2-20 3면

[나는, 우리는 '성 노동자'입니다 ④]
철저히 도구로 이용된 여성들

나라 경제에 이바지 애국자로 칭송

성병진료소 설치·성매매 단속 제외

집결지 통행금지 사회격리·방조탓
지자체 불법 철거 명분 모순적 행위

폐쇄명령 앞서 정부 사과·성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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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평택시 송탄동 K-55 미 공군기지 부근 카네기 캬바레 골목, 1970년대 동두천 보산동 미 2사단 앞 럭키 클럽 골목. /출처 박성복 평택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혐오는 가깝고 연대는 먼 공간, 도시개발 논리가 손쉽게 파고들어 원주민을 쫓아내는 지역. 성매매 집결지의 흥망성쇠에 있어 국가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인권 회색지대'에 머문 여성들은 오랜 기간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도구로 이용되며 '지워진 존재'가 됐다.



성매매 집결지의 형성은 부자연스러웠다. 어느 날 갑자기 '성 노동'을 하고 싶은 여자들이 한 지역으로 모여들어 '몸'을 재화로 삼아 자연스레 '성매매 시장'을 형성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여성, 이들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고 싶은 포주, 그리고 여기에 '불법'이라고 규정한 성매매 산업을 오랜 기간 묵인한 국가. 세 요소가 맞물려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때 국가 차원에서 성매매 종사 여성을 칭송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성은 달러를 벌어들여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애국자'였다. 하지만 허울뿐인 상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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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관광지내 (구)성병관리소가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2017.5.28 /경인일보DB
 

곧이어 전국 성매매 기지촌에는 성병 진료소가 들어섰다. 주한미군의 성병 예방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곳 여성들을 관리하려는 목적이었다. 성병 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한 여성은 이른바 '낙검 수용소'에 끌려갔다. '동두천 구 성병관리소'가 도내 대표적인 곳이었다.

주한미군이 떠나면서 지역 내 기지촌들은 내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현재 형태의 성매매 집결지로 변화했다. 기지촌 내 여성들에 관여하던 국가의 손길도 사라졌다. 하나 자유가 아닌 명백한 '방치'였다.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은 성매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다뤘지만, 이듬해 '특정 지역 설치(적선지대)'라는 예외 조항을 두고 파주·동두천·의정부·이태원 등 미군기지 인근과 주요 기차역 근처 104군데를 특정(윤락) 지역으로 지정해 성매매 단속에서 제외했다.

2010년대에 들어 경기도 내 지자체 곳곳에서 폐쇄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성매매 집결지는 사실상 '불편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파주를 포함해 수원·성남·평택·동두천 등지에서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으로 묶어 사회로부터 격리했다. 성을 알선하거나 매매하는 행위가 '불법'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 수십 년 동안 지역 내 특정 공간에서 암묵적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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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기지촌 내 종사 여성과 미군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 /출처 김해정씨

국가의 책임을 빼놓고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이야기하기 힘든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국가가 성매매 집결지 운영에 개입한 동시에, 세월이 흘러서는 이곳을 '금단의 구역'으로 대하며 방관했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매매는 '불법'이기에 집결지를 즉시 철거해야 한다"는 지자체의 행정대집행 명분이 당사자들에게 모순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내에서 23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는 최모(66)씨는 "용주골은 주한미군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부터 국가가 성매매에 개입한 역사적 비극이 있는 곳이다. 단순하게 '불법'이란 프레임만으로 바라보고 한순간에 밀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풀 열쇳말은 '지우기'가 아닌, '반성'과 '논의'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 명령에 앞서 역사에 대한 성찰은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전제다. 최근 기지촌 성매매 집결지와 관련해 학계, 시민사회, 법원 등에서 나오는 국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와 판결은 해결의 첫단추가 될 수 있다.

지난 2022년 9월 대법원은 기지촌 여성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여성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가가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하고 묵인한 것을 넘어, 이들을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취지다.

물론 과거 주한미군 기지촌과 현재의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완전히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성매매 종사 여성을 '시민'이 아닌, '수단'으로 다뤘다는 것이다.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될 때는 기지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여성들을 통제했고, 도시화에 따른 재개발 논리가 성매매 종사 여성들을 억압할 때는 '인권'이 아닌 '자본'의 편에 섰다.

'주홍빛 연대 차차'의 여름씨는 "파주시를 넘어 한국 정부가 기지촌 시절부터 성 노동자들을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외화벌이 대상으로만 이용했다. 훗날 기지촌은 성매매 집결지가 됐고, 부동산 개발 이익 때문에 집결지가 사라지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이제 이곳 여성들에게 나가라고 한다"며 "기지촌·성매매 집결지를 방조했던 경기도나 정부의 사과 또는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단속과 처벌을 넘어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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