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직접 정비 손놓고, 민간 개발에만 기대는 행정 [성매매특별법 20년 완월동 폐쇄 원년으로]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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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연 소멸에 의존한 지자체

지난해 8월 정비·폐쇄계획 제출
부산 서구 ‘관 주도 불가’ 피력
“주변 지역 재개발로 환경 개선”
파주 용주골·창원 서성동 등
다른 지역은 불법건축물 철거
자활지원 병행하며 전방위 압박

파주시는 2023년 1월 2일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 정비계획을 1호 공식 문서로 채택하고, 집결지 폐쇄 전담 TF팀을 신설해 본격적인 폐쇄에 나섰다. 집결지 내 불법건축물 시정명령 후 원상복구되지 않은 건물에 대해서는 강제철거에 나서고 있는 모습. 파주시 제공 파주시는 2023년 1월 2일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 정비계획을 1호 공식 문서로 채택하고, 집결지 폐쇄 전담 TF팀을 신설해 본격적인 폐쇄에 나섰다. 집결지 내 불법건축물 시정명령 후 원상복구되지 않은 건물에 대해서는 강제철거에 나서고 있는 모습. 파주시 제공

부산연구원은 10년 전 완월동 재생 방안을 진단하는 보고서를 통해 완월동을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묵인과 배제가 쳐놓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폐쇄 논의를 위한 중요한 전제는 공공 개입의 의지라고 짚었다.

4년 전 도시재생이 좌절된 뒤 완월동을 대하는 관의 태도는 전략적 폐쇄가 아닌 묵인에 가까웠다. 관할 지자체인 서구청은 아파트 개발이 추진되고 있으니 관 주도 폐쇄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완월동을 망각할 것인가, 폐쇄할 것인가. 결과는 공공의 의지에 달렸다.

5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서구청은 지난해 8월 부산시 요청에 따라 완월동 정비·폐쇄계획을 제출했다. 서구청은 해당 계획에 타 시도에서 추진하는 관 주도 방식의 정비나 폐쇄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서구청 가족행복과 관계자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다. 아파트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내용이었다”며 “서구만의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부산시나 경찰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구청은 상반기 중으로 자활 지원 등을 비롯한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그동안 집창촌 때문에 발전이 더뎠던 충무동과 초장동 일대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도 없다. 서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집결지 주변으로 재개발 조합 등 여러 형태로 개발이 논의되고 있다”며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 자연스럽게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결지 폐쇄를 요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 파주시 제공 집결지 폐쇄를 요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 파주시 제공

아파트 개발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폐쇄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웠다는 서구청의 답변은 집창촌 폐쇄를 추진하는 타 지역과는 대조적이다. 대부분 집창촌은 개발 수요와 맞물려 폐쇄 계기가 마련됐지만, 지자체는 동시에 집결지 내 불법행위에 대한 행정적 제재와 업종 전환 추진, 자활지원 등을 병행하며 집결지에 균열을 냈다.

지난해 1월부터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 폐쇄를 추진하는 파주시는 올해 용주골 폐쇄 이후 공간 활용 방안을 찾는 연구용역을 실시한다. 지난해 불법건축물인 업소에 대한 강제 철거가 이뤄지기도 했다. 용주골의 성매매 업소와 여성은 지난해 1월 약 70개 업소 200여 명 규모에서 12월 약 40개 업소 80여 명 규모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용주골 일대에는 지역주택조합이 형성돼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파주시는 조합과 협의를 거쳐 일부 공간을 지역 거점시설 등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파주시 여성가족과 성매매집결지정비TF팀 전종고 팀장은 “재개발이 시행 되든 안 되든 (지자체가) 폐쇄 이후 공간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정책적으로 폐쇄를 추진한 뒤 재개발이 완료되기까지 해당 지역이 방치되지 않도록 대응하기 위한 연구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수원역’으로 통칭되는 성매매 집결지는 관 주도로 폐쇄가 이뤄진 성공적 사례로 꼽힌다. 수원시는 2021년 지난한 폐쇄 과정을 기록한 199쪽짜리 백서 〈울림〉을 발간했다. 집결지 한가운데 소방도로를 개설하면서 집결지 안에 가로정비추진단 사무실을 차려 업주와 건물주를 설득하고 나섰다. 건물 용도변경 지원 등을 통해 2021년 5월 31일 오후 11시 20분 집결지 자진폐쇄를 이끌어냈고, 2022년까지 여성 64명에게 생계비와 주거비 등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집결지 내 성매매 업주와 여성을 가리지 않고 취약계층을 발굴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지원도 이뤄졌다.

창원시는 2019년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 폐쇄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고, 지난해부터 집창촌 1만 여㎡를 문화공원으로 바꾸기 위한 보상 작업에 돌입했다. 시는 자활 사업을 신청하고 자활 계획을 세운 여성 17명에게 생계비 등 3억 원을 지원했고, 이들은 직업훈련 등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창원시 관계자는 “현장 상담소에서는 검정고시뿐만 아니라 버스 타는 훈련 등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지원했다”며 “무엇보다 관의 폐쇄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완월동의 재생 방안을 연구했던 부산연구원 박상필 책임연구위원은 “성매매 여성이 계속 취약한 상황에 놓이면, 생업이었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계속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며 “겉으로 휘황찬란한 건물이 서겠지만, 사람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이동해 음성화될 우려도 있어 균형감 있게 다뤄야 한다”고 전했다. -끝-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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