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 꺼진 줄 알았는데… 3년간 성매매 단속 52건 [성매매특별법 20년 완월동 폐쇄 원년으로]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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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완월동은

스산한 외관과 달리 근절 안 된 성매매
경찰 나타나자 호객꾼 뿔뿔이 흩어져
경찰 “외국인 등 예약제로 영업” 추정
지난해 경찰에 적발된 성매매만 19건
몰수 안 두려운 건물주 “재판하면 이겨”

지난 24일 부산 서구 충무동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전경. 주상복합 건립이 예정된 업소 40여 곳의 유리창에는 ‘철거 예정’ 등 글자가 적혀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24일 부산 서구 충무동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전경. 주상복합 건립이 예정된 업소 40여 곳의 유리창에는 ‘철거 예정’ 등 글자가 적혀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서구 충무동과 초장동 일대 성매매 집결지는 속칭 완월동으로 불린다. 현재 성매매 업소로 추정되는 건물 56곳 중 43곳은 주상복합 건물 부지에 포함되어 개발을 앞두고 있다. 나머지 10여 곳도 초장동 재개발 사업으로 개발 예정이다. 영업하는 곳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일부 업소는 불을 꺼놓은 채 영업 중이다. 아직도 성매매 여성들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외벽엔 ‘철거’ 붉은 페인트칠… 커튼 안에서는

■홍등은 꺼졌지만 영업은 계속

지난 26일 오후 8시께 취재진은 서부경찰서의 완월동 순찰에 동행했다. 사방이 성매매 업소 건물인 골목길에 중년 여성 3명이 모여 있었다. 롱패딩을 껴입은 이들은 자주 순찰을 도는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진입하자 뿔뿔이 흩어졌다. 골목 일대에는 호객꾼이 구매자를 기다릴 때 앉는 방석이나 의자가 있는 가설건축물이 설치돼 있었다. 집결지를 한 바퀴 돌고 다시 같은 지점을 찾아가니 그 여성이 또다시 업소 사이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전형적인 호객꾼의 모습이다. 경찰은 “호객꾼이 업소 앞에 나와 있으면 영업을 하는 곳이라 본다”고 말했다. 일종의 ‘피크 시간대’인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구매자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마치 폐허 같은 모습으로 고요하게 철거만을 기다리는 듯하지만, 완월동에서 성매매 영업은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완월동에서는 성매매 처벌법 위반으로 2021년 17건, 2022년 16건, 2023년 19건이 단속됐다. 지난해 12월 말 경찰 순찰에서도 거리에서 호객꾼 3명이 확인되는 등 영업 정황은 계속해서 포착됐다.

완월동의 낮은 밤보다 더 스산했다. 지난 19일 완월동에서 사상 처음으로 몰수가 확정된 M 업소를 찾아갔다. 인근의 건물 40여 곳의 유리창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건물과 유리창에는 ‘X’ ‘철거 예정’ 등 붉은색 스프레이로 쓴 글자가 적혀있었다. M 업소의 입구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1층 내부는 한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듯했고, 천장에 붙은 화려한 조명 기기만이 영업의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2021년 5월 24일 경찰이 M 업소의 성매매 영업을 적발하며 촬영한 사진. 성구매자에게 제공되는 흰 수건이 업소 한켠에 차곡차곡 개어져 있다.부산 서부경찰서 제공 2021년 5월 24일 경찰이 M 업소의 성매매 영업을 적발하며 촬영한 사진. 성구매자에게 제공되는 흰 수건이 업소 한켠에 차곡차곡 개어져 있다.부산 서부경찰서 제공

M 업소 인근 건물주 B 씨의 협조로 살펴본 또 다른 업소의 내부는 경찰과 성매매 여성들이 말한 집결지 업소의 전형적인 구조였다. 1층 구석에는 여성들이 호객을 위해 앉던 흰색 ‘바’ 의자가 치워져 있었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계단을 지나 향한 2층엔 복도 양쪽으로 나무 문이 8개 달려있었고, 복도 한쪽 선반에는 손님에게 제공되는 흰 수건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작은 욕실이 딸린 침실은 전등을 켜면 붉은빛으로 가득 찼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엄마’로 불렸다는 B 씨는 “업소 대부분 내부는 비슷하게 생겼다”며 “요샌 이 동네에 그런 상황(성매매)도 없고, (여성이) 1~2명 나오다 말다 거의 안 하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완월동 일대 건물이 헐리기 전까지는 단속을 이어가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철거로 공간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영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경찰은 “매일 영업하지 않지만 최대 10곳 정도 영업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철거 표시가 됐다고 해서 영업을 안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선원 등 외국인 손님이나 완월동을 궁금해 찾는 이들이 다수”라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주로 예약제로 운영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2021년 5월 24일 경찰이 M 업소의 성매매 영업을 적발하며 촬영한 사진. 홍등이 켜진 내부를 가리기 위해 커튼을 치고 물병으로 고정한 모습이다. 여성이 구매자에게 나눠주는 피임기구 등도 적발됐다. 부산 서부경찰서 제공 2021년 5월 24일 경찰이 M 업소의 성매매 영업을 적발하며 촬영한 사진. 홍등이 켜진 내부를 가리기 위해 커튼을 치고 물병으로 고정한 모습이다. 여성이 구매자에게 나눠주는 피임기구 등도 적발됐다. 부산 서부경찰서 제공

■사상 첫 몰수에도 건물주들 “두렵지 않아”

부산지검 서부지청은 지난해 11월 16일 M 업소에 대한 공유자 지분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고 29일 밝혔다. 앞서 7월 법원이 성매매 알선죄가 선고된 건물주 S 씨의 지분 90%를 몰수했고, 그 판결이 확정된 데 따른 조치다. 건축물대장상 M 업소는 목조 2층 주택이었지만, 실제로는 2개 층을 신축한 4층짜리 불법 증축 건물이다.

부산 서구청에 따르면, 완월동 주상복합 개발 대상지 내 불법 건축물과 무허가 건물은 총 20곳이 있다. 성매매 영업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법 개조까지 한 건물로 수익을 얻었지만, 완월동은 그동안 몰수 무풍지대였다. 지난해 법원은 성매매 범죄에 장소 제공의 중요성과 재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했고, 특별법 제정 19년 만에 처음으로 몰수가 확정됐다.

수사 단계에서는 꾸준히 몰수보전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완월동 일대 건물과 토지 등에 11건의 몰수보전이 인용됐다. 몰수보전이 인용되면 건물주는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 건물을 처분할 수 없다.

경찰은 “범죄수익 환수 등 의미에서 성매매 공간을 제공한 건물주를 입건하고, 건물을 몰수보전 한다”며 “대부분 성매매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하는데, 건물 매입 과정에서 그 사실을 모를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완월동에서 사상 첫 몰수가 이뤄졌지만 건물주들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건물주 B 씨는 몰수 선고가 드물었던 법원 판단의 역사를 믿는 모습이었다. 취재진이 M 업소 몰수 소식을 알리자 바로 시행사에 전화를 걸어 사업에 지장이 있는지 확인했다. “괜찮다”는 대답을 들은 그는 “국가를 상대로 ‘이건 아니다’하고 재판을 하면 거의 (건물주가) 이긴다”고 주장했다.

법률 전문가는 이번 몰수 선고를 두고 ‘바로잡힌 판결’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다소 늦은 감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법무법인 민심 변영철 변호사는 “그동안 성매매 자체를 범죄시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몰수는 사문화 돼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성매매 근절에 있어서 상당히 바람직한 사례라고 볼 수 있으나, 곧 폐쇄하는 집결지에 몰수가 선고돼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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